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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동북아 오일허브, 자원개발보다 긴 호흡으로 봐야”
[이투뉴스] 에너지·자원산업은 다른 분야보다 인내심이 요구된다.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될성부른 사업도 쉽게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백년대계의 긴 호흡으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본격 착수된 지 3년이 된 오일허브사업은 그 동안 수차례 따가운 눈총의 대상이 돼 왔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개정 백지화, 해외 주주사의 투자철회 통보, 저유가 장기화 등 여러 걸림돌에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우려섞인 시각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오일허브는 실패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속도가 우선시되는 한국에서 느린 걸음을 내딛는 에너지산업은 자칫 위태로워 보일 때가 많다. 일각에서는 오일허브를 향해 ‘결실 없는 헛바퀴’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긴 시일이 걸리는 에너지산업의 특성상 이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일허브는 에너지·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에너지안보를 확보하고 아시아프리미엄을 축소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특집] “동북아 오일허브, 자원개발보다 긴 호흡으로 봐야”이규태 서강대 교수는 "싱가포르 오일허브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이 걸렸다"며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을 바라보는 단기적 시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동북아 오일허브는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사업이지, 정부가 돈을 투자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현재 국내에 없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지만, 관성을 지닌 시장의 특성상 치적이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은 있지요”

이규태 서강대 기술전문경영대학원 교수가 동북아 오일허브에 대해 말문을 연 첫 마디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떠들썩한 분위기와 달리 무엇이 돼 가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를 인터뷰 첫머리에 풍긴 탓이다. 관성을 지닌 시장이 천천히 진전하는 만큼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도 거기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부연이 뒤따랐다.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치고, 한걸음씩 일정한 방향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부는 시장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시장 전체를 리드해야 하고, 시장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2008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된 국책사업인 동북아 오일허브사업. 우리나라를 동북아시아의 석유거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여수·울산지역에 대규모 상업용 저장시설을 건설·운영하고, 거래 활성화를 위해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석유거래 시장이 형성된 여수와 울산에 다양한 석유 공급자와 소비자가 모이도록 하는 것은 필수다. 이를 충족시키면 금융, 항만 등 인프라 발달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2013년 3월 여수저장시설 구축을 완료하고 그해 12월 울산북항사업 추진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상업용 저장시설 구축을 중심으로 오일허브 프로젝트 사업이 착수됐다. 현재 상업 운영 중인 여수와 건설 중인 울산 북항, 예비타당성 조사가 한창인 울산 남항이 국내 3대 저장시설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여수 사업은 지난 2월 기준 99.6%의 계약률을 보이고 있고 물동량도 전년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활성화되고 있다. 오일허브코리아여수(OKYC)의 계약률은 2013년 75.6%를 시작으로 2014년 87.7%, 지난해 93.3%, 올해 3월 기준 99.7%로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물동량 역시 2013년 1311만3000배럴, 2014년 4895만7000배럴, 지난해 8859만5000배럴을 기록했다.

이처럼 물동량과 계약률이 안정화에 다가서는 와중에도, 저유가 장기화로 세계 1위의 탱크터미널 운영업체인 보팍이 지난해 투자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오일허브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규태 교수는 이같은 시선은 탱크터미널을 비롯한 석유시장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석유시장은 보통 콘탱고(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상태) 마켓인데, 백워데이션(선물가격이 현물가격에 비해 저평가된 상태)이 형성되려면 유가가 엄청나게 떨어져야 한다”며 “재작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저유가로 형성된 예외적인 백워데이션은 보팍이 탱크터미널 투자를 취소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석유시장은 하이퍼 콘탱고 마켓이며, 전세계적으로 탱크터미널 시장이 올해처럼 호황인 적이 없다. 이는 단기사이클로 오일허브 사업의 성패를 판단해선 안 되는 이유다. 오일허브 사업은 50~100년이 걸리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3대 오일허브인 미국 걸프만 연안, 유럽 ARA(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앤트워프), 싱가포르는 석유 및 증권거래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 오일허브는 이제 막 30년 역사를 달성했다. 미국과 유럽시장이 100년에 걸쳐 자연스레 형성된 것과 달리 싱가포르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중계무역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는 아직 선물거래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초 그렇게 형성되지 않은 시장의 관성 탓이다. 모든 규제를 자유화한 싱가포르조차 아직 선물거래의 성공을 맛보지 못했는데, 물류기능조차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가 선물거래를 언급하는 것은 지나친 모순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석유 선물거래는 벙커유 뿐”이라며 “그 정도로 오일허브에서 선물거래를 안정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가 오일허브 사업을 2~3년 단기 사이클로 접근해야 하는지, 백년대계로 여겨야 하는지 답이 나오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특집] “동북아 오일허브, 자원개발보다 긴 호흡으로 봐야”오일허브 1단계 공사를 진행 중인 울산북항 전경.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일허브 초기단계인 10~20년 동안은 물류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안정화되고 조금씩 시장가격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트레이딩허브와 금융산업이 다음 순서로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선물거래가 가능해진다. 또 물류가 형성되면 은행 같은 금융권의 동산담보대출이 활성화되고 실물거래업자들의 리스크헤징도 이뤄진다. 그러나 우리는 초기단계인 물류기능조차 형성되지 않은 채 안정화 단계인 선물거래를 형성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오일허브의 가능성을 달리 봐야 하는 대목은 또 있다. 바로 지난해 오일 트레이딩 업체들 중 상당수가 역대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사실이다. 이는 유가 상황과 오일허브 사업을 별개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을 싣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 24일 비톨, 건버, 글렌코어 등 세계 최대 원유 트레이딩 업체들은 주요 지역 저장탱크 사용계약을 최장 2018년 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계속되는 저유가 흐름이 2018년 이후까지 장기화될 것으로 고려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기에 또 다른 근거가 있다고 첨언했다. 하이퍼 콘탱고 마켓을 형성한 현재 석유시장은 트레이더들이 물품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팔면 더 큰 이익을 남긴다. 이는 저유가가 아닌 가격 변동성(볼라틸리티, Volatility)이 원인이다. 오일허브 사업은 저유가이든, 고유가이든 상관없이 원유가 수급 불균형에서 균형으로 나아가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아비트리지(동일 상품이 지역에 따라 가격이 다를 때 이를 매매해 차익을 얻으려는 방법)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별 품질기준에 맞추기 위한 블렌딩 허용은 필수다. 우리나라에서 석대법 개정이 계속 요구되는 이유다.

에너지산업의 신패러다임인 에너지신산업과 신재생에너지 못지 않게 석유산업의 발전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지난달 26일 석유시장감시단이 개최한 '동북아오일허브 투자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 허은녕 서울대 교수는 “2000년부터 국가차원의 장기에너지계획을 수립한 선진국들은 에너지안보에 대한 국가경영전략적 차원의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자국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근거로 기술개발 정책을 수립하는 등 에너지절약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강조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는 앞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태 교수 역시 “최근 정부가 재생에너지정책과 에너지신산업에 집중하면서 화석에너지에 대한 필요성이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섞인 시각이 있다”면서 “재생에너지의 발전이 곧 화석연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에너지산업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고 일갈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물동량과 정제시설, 항구 여건 등을 갖춘 오일허브 산업은 비산유국인 우리가 석유산업 중심에 서기 위한 안성맞춤의 조건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가인 중국과 일본 등 대규모 수요처와 인접한 지리적 요건, 러시아 동시베리아 원유(ESPO), 미국 셰일오일, 북극항로 등의 영향으로 동북 지역으로의 원유 공급원이 다원화되는 점은 우리나라가 싱가포르에 이은 세계 4번째 오일허브로 도약하는데 이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새로운 북방항로 시대를 위한 장기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선박의 기항 및 주유에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중국은 바다의 수심이 얕아 접안이 힘들고, 일본은 지진과 해일의 위험성이 큰 반면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지리적·환경적 장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BP에 따르면 동북아 석유수요는 2012년 일일 1790만 배럴에서 2014년 1920만 배럴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점 외에도 오일허브 사업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다. 바로 범부처적 협력이다. 현재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다수의 부처가 조율해야 하는 범부처 사업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규태 교수는 “핀테크의 경우 금융위원회와 미래부 소관으로 양 부처가 조율해야 했기 때문에 협력이 어려웠다”며 “2개 부처도 그러한데 하물며 오일허브는 무려 6개 부처가 협력해야 한다. 부처간 조율이 상당히 힘든 만큼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 “전국구 사업인 오일허브가 사실상 울산이라는 특정 지역의 현안으로 축소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석대법 개정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는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언급했던 ‘규제를 전부 물에 빠뜨렸다가 살릴 것만 건져야 한다’는 말이 오일허브에 가장 잘 들어맞는 비유일 것”이라며 “현재 법 규정은 규제가 얽히고 설켜서 A법을 추진하려면 B법이 발목을 잡고, B법을 풀려면 C법이 걸림돌이 되는 행태”라며 특별법 신설과 단계적 법 개정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주영 기자 - 등록일 : 2016년 05월 03일 (화) 07:45:56

Editor : 6기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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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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